2019년 7월, 당시 민정수석이던 조국은 박상기의 후임 법무장관으로 내정됐다. 여기엔 다음과 같은 문제가 있었다. 첫째, 민정수석은 원래 공직인사가 있을 때 후보자에 대해 검증하는 자리, 그런데 현직 민정수석이 법무장관이 된다면, 도대체 누가 그를 검증해야 하는지 아리송해진다. 셀프검증이라도 해야 하는 것이냐는 비판이 나오자 청와대는조국으로부터 먼저 사표를 받은 뒤 김조원을 새 민정수석으로 임명하는 편법을 쓴다. 여러 가지 여건상 이분이 조국을 제대로 검증할 리는 없었으니, 그 후 조국사태가 터지는 것은 필연이었다. 둘째, 민정수석이 법무장관으로 직행하는 건 적절한 인사는 아니었다. 이런 사례는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1년에 한 차례 있었는데, 지금은 작고한 권재진이 그 주인공이었다. 당시 야당이던 민주당은 청와대의 검찰장악 의도라며 거품을 물었고, '군사독재 시절에도 없던 일'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특히 그 시점이 총선을 1년여 앞둔 때라 공정한 선거관리가 불가능하다며 거세게 반발하기도 했는데, 조국이 임명된 2019년 7월이 총선 9개월 전임을 고려하면, 그들의 내로남불이 최근 들어 갑자기 생긴 일은 아니었다. 게다가 민정수석--> 법무장관이 옳지 않은 일이라는 사실을 문재인이 모르는 바도 아니다. 2006년, 당시 대통령이던 노무현은 민정수석이던 문재인을 법무장관에 기용하려 했지만, 야당인 한나라당이 검찰장악 의도라며 반발하자 뜻을 접은 바 있다. 친구인 노무현이 13년 전 하려다 만 일을 결국 해낸 문재인은 역시 노무현 정신의 계승자 답다. 셋째, 조국이 민정수석으로 일을 잘했다면 모르겠지만, 그 시절 청와대의 인사검증은 그다지 훌륭하지 않았다. 초대 법무장관 안경환이 낙마한 것을 비롯해 여러 인사문제가 있었고, 지금은 널리 알려졌지만 유재수 전 부시장의 감찰무마 사건도 있지 않았던가? (유재수는 결국 뇌물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조국이 유일하게 잘한 일은 페북질로, 당시 그는 자신의 미래를 모조리 부인할, 훗날 조만대장경으로 명명될 게시물들을 페북에 올리고 있었다. 이런 이를 무리하게 법무장관으로 만드는 것은 차기 대선을 위해 조국에게 스펙을 쌓게 하는 용도 말고는 다른 이유를 찾기 어렵지만, 문재인은 8월 9일 , 조국과 자신을 모두 불행하게 만들 선택을 한다. 물론 문재인은 조국이 장관이 되는 데는 별 걸림돌이 없다고 생각했으리라. 당시 언론들은 조국 청문회의 쟁점이라봤자 폴리페서 논란과 과거 운동권 경력 정도가 고작일 걸로 봤으며, 실제로 과거 운동권 내에서 조국의 이름은 듣보잡이었으니, 그게 낙마할 사유가 될 것 같진 않았다. 하지만 일은 엉뚱한 데서 터졌다. 맨 처음 터진 건 사모펀드와 동생의 위장이혼 의혹, 당시 세월호 팔이로 유명한 박주민의 쉴드는 역대급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게 낙마할 사유라고 생각하진 않았던 것 같다. 사람들은 사모펀드가 뭔지 잘 몰랐고, 자신도 아닌, 동생의 위장이혼이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싶었을 것이다. 일이 커지자 조국은 펀드를 공익법인에 기부하고, 자신의 가족이 운영하던 웅동학원도 공익재단으로 만들겠다고 했지만, 그 약속은 물론 지켜지지 않았다. 그러던 8월 20일, 조국이 법무장관에 지명된 지 12일째가 되는 날, 동아일보에 의해 조국 딸의 입시비리 의혹이 보도된다. 지금은 모두가 알게 된, 논문 1저자 의혹 말이다. 이런 가정을 해보자. 여론에 밀린 문재인이 조국 임명을 철회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니면 가족 비리가 걱정됐던 조국이 스스로 사표를 냈다면? 어느 경우든 진중권을 비롯한 진보세력이 문재인에게 등을 돌리진 않았으리라. 물론 문재인은 나름대로 삽질을 계속했겠지만, 그의 지지층이 단지 무능 때문에 지지를 철회했을 것 같진 않다 (나 역시 그랬을 것이다). 조국 역시 그 당시에는 불명예스러운 퇴진이라 여겼겠지만, 조용히 서울대 교수로 돌아갔다면 차기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가족 비리가 그토록 많은데 무슨 소리냐고 펄쩍 뛰겠지만, 윤석열 총장이 임기를 마치고 물러난 뒤의 검찰이 감히 그의 뒤를 캐는 건 쉽지 않을 테고, 동아일보 등이 아무리 심층취재를 한다해도 높은 지지율이 그 뉴스를 무력화시킬 수도 있다. 그 결과 조국 대통령-정경심 영부인-조민 의사-이중국적자인 조원 군대 안감 이라는 환상적인 조합이 이루어질 수도 있었고, 문재인도 퇴임 후 양산에 지어진 넓은 빌딩에서 유유자적하며 살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문재인은 자신의 약점으로 회자되던 똥고집을 버리지 못했고, 그로 인해 재집권 실패-문재인 구속-조국 위선자 낙인-정경심 구속-조민 의사 (C발)-조원 지탄 (이 자식은 이 경우에도 군대 안가겠구나)이라는, 조국에겐 우울하지만 정상인에겐 환상의 결과가 만들어질 것 같다. 그래도 이게 참 다행이다. 덕분에 진보의 파렴치한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났지 않은가. 역시 사람은, 물러날 때를 알아야 한다. 그 때를 모르는 문재인은 사람이 아니며, 그 결과 대가를 치렀다. 참고로 조국 가족의 비리가 아직 밝혀지기 전인 2019년 6월 27일, 한 네티즌이 쓴 댓글이 눈에 띈다. 이분은 대체 어떻게 이런 걸 미리 알았을까. * 기사를 찾다보니 내가 8월 20일에 쓴 칼럼도 있었다. 이때는 문정권을 싫어하기 전이라, 그냥 조국 임명만 철회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썼는데, 이 칼럼 이후부터 계속 조국만 까는 칼럼을 쓰다가 경향으로부터 질책을 받는다. 그 후 칼럼들이 이것만큼 재미가 없었던 것도 한 이유일 듯. 이때는 내가 블로그나 SNS를 할 때가 아니었고, 오직 한달에 한 번 경향에만 칼럼을 썼는데, 이 칼럼이 실리고 난 1년쯤 후, 내가 대표적인 문까가 돼서 문재인을 죽어라 욕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지금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의 나에게 그 얘기를 해준다면, "서민을 사칭하지 마라'고 쫓아보냈을지도... |